본문 바로가기
해양수산

[전문가 기고] 극지연구소 이원상 박사의 눈에 비친 남극의 현실

by 오션지키미 2024. 5. 21.
320x100
반응형

 남극의 여름 낮기온이 20를 육박하는 사이, 얼음만 있어야 할 이 땅에 생명체가 자라나고 관광객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지금 남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앞으로 우리 일상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분명한 건, 물에 잠긴 도시의 이야기는 더 이상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극에 인천이라는 이름을 가진 빙하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 옆으로는 리우, 베를린, 교토, 파리, 발리의 이름을 딴 빙하도 나란히 줄지어 있다. 2021년 영국 남극지명위원회는 남극 서쪽 지역의 이름 없는 빙하 9개에 주요 기후 회의를 개최했던 전 세계 도시들의 이름을 붙였다. 인천은 2018, 48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총회 개최지로서 이름을 올렸다. 이제 막 이름을 얻은 9개의 빙하는 사실 빠른 속도로 녹아 사라지는 중이라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1994년부터 25년간 이 지역에서 소실된 얼음만 3150억 톤에 달한다. 이는 전 세계 해수면을 약 1cm 상승시킬 수 있는 양이고, 얼음이 녹는 속도는 해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아득히 먼 남극 땅에 친근한 도시들의 이름을 붙인 건, 한 번이라도 눈길을 달라는 간곡한 신호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의 이원상 박사는 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힘쓰는 사람 중 하나다. 2006년부터 매년 남극을 오가며 바다의 온도와 빙하의 두께를 재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남극의 생태계를 연구해 미래를 예측한다. 한번 탐사를 나서면 두 달 남짓 머문다. 몸을 씻는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극한의 환경에서 추위와 위험을 무릅쓰고 매년 남극을 찾는 이유는 하나. 공상과학영화에 빗댄 추상적인 미래가 아닌, 구체적이고 완전한 미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남극의 펭귄과 북극곰이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것 말고도 우리가 직시해야 할 문제는 많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사는 날까지 이 땅이 물에 잠길 일은 없다고 믿으며 남극을 외면할 테지만, 갈수록 빠르게 변화하는 남극의 민낯을 목도해온 이원상 박사에게는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문제다. 매년 남극을 찾아 더 정교하고 정확한 데이터를 얻고, 인터뷰와 온·오프라인 강의를 통해 한 번이라도 더 목소리를 내려는 이유다.

 

해마다 스웨이츠 빙하의 두께가 2m씩 줄고 있다. 남극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스웨이츠 빙하가 사라지면 전 지구의 평균 해수면은 65cm 상승할 것이다. 이러한 징조는 약 40년 전부터 계속 있어왔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속도가 6배 정도 빠르다는 것이 문제다.

[하퍼스 바자] 거대한 얼음 대륙 남극은 지구온난화의 현주소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곳이다. 매년 이곳을 직접 밟고 연구하며 어떤 장면을 목도했나?

[이원상] 최근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는 남극의 모습이 어딘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을 것이다. 이를테면 얼음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는 대신 사람 몸에 생긴 튼살처럼 자잘하게 금이 가 있거나, 그 사이로 물이 고여 있는 풍경 같은 것. 혹은 북극처럼 물 위에 얼음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아름답게 보였을지 모르겠으나, 얼음으로 뒤덮여 있어야 할 대륙에 금이 가고 물이 보인다는 건 경각심을 느껴 마땅한 징표다. 해마다 이 거대한 얼음 대륙이 빠르게 녹고 있음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하퍼스 바자] 1988년 지어진 한국 최초의 남극 과학 기지인 세종기지는 지금 연구자들 사이에서 남극의 하와이라고 불린다던데.

[이원상] 2021년도 여름 즈음 세종기지의 기온이 18~20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다. 세종기지는 남극 대륙 외곽의 섬에 위치해 있는데, 이 섬 안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얼음이 완전히 녹아버렸다. 위도가 낮은 지역이라 사시사철 얼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점점 얼음 대신 땅이 드러나는 시기가 길어지고 있다. 남극 전체의 상황도 다를 바 없다. 남극엔 그저 얼음만 있으니 생물이 살 수 없는 것이 정상인데, 요즘은 이끼 같은 생물도 많아졌다. 인간과 달리 자연의 시간은 최소 몇 백, 몇 천 년 단위를 기본으로 한다. 고작 20년 정도 남극을 오간 나에게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다는 건, 자연의 입장에서 극단을 치닫고 있다는 뜻이다.

 

[하퍼스 바자]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 중순까지 또 한 차례 남극에 머물렀다. 이번 탐사에서는 무엇을 연구했나?

[이원상] 극지연구소의 주된 업무는 남극에서 얼마나 많은 얼음이 녹을지 예측하는 일이다. 요즘 이 연구를 할 때 가장 주목하는 곳이 대륙 서쪽에 위치한 스웨이츠 빙하다. 서남극의 빙하가 연쇄적으로 녹아 내리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코르크 마개에도 비유하는데, 지금 해마다 스웨이츠 빙하의 두께가 2m씩 줄고 있다. 남극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스웨이츠 빙하가 사라지면 전 지구의 평균 해수면은 65cm 상승할 것이다. 이러한 징조는 약 40년 전부터 계속 있어왔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속도가 6배 정도 빠르다는 것이 문제다.

 

[하퍼스 바자] 그렇다면 2050년까지 몰디브의 최대 80%가 물에 잠길 것이라는 예측도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이원상] 물론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관측 장비가 발전하면서 여태껏 증명해내지 못했던 물리 현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다. 결과값은 점점 정교해지고, 불확실성은 줄어들고 있다. 많은 뉴스에서 2050년을 기준점처럼 이야기하는 이유는 불확실성이 거의 없는, 가장 가까운 미래여서 그렇다. 30년도 채 남지 않았으니 충분히 예측 가능한 범위다. 지금 과학자들이 내놓는 수치를 최소값으로 보면 된다. 이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하퍼스 바자] 올해 초 극지연구소는 2050년 인천의 해수면이 4cm 정도 상승할 거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의아했던 건 극지방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 인천 해수면의 상승 폭이 지구 평균인 3.6cm보다도 높게 예측됐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이원상] 중력 때문이다. 남극 주변은 아주 큰 질량을 가진 얼음이 녹아 사라지니 중력의 감소로 해수면이 오히려 낮아지기도 하는데, 상대적으로 그와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반작용으로 해수면 상승 폭이 크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과잉 상승 작용 때문에 뉴욕이나 시드니 같은 주요 해안 도시보다도 인천의 해수면 상승 폭이 높게 예측된다. 이 역시 예측 가능한 최소값이라고 봐야 한다. 파리기후협약에서 약속한 1.5이내의 온도 상승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

 

[하퍼스 바자] 영화 <설국열차>는 지구 대기 온도를 낮추기 위해 인공 냉각제인 CW-7을 살포한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남극의 빙하 문제에도 이러한 지구공학적 대책을 적용할 수 있을까?

[이원상] CW-7 살포로 결국 빙하기를 맞았다는 <설국열차>의 설정은 지구공학의 처참한 실패 사례이긴 하지만, 결코 영화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기후위기에 맞선 공학기술적 시도는 다방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실제로 따뜻한 물의 유입을 막도록 빙하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천연섬유로 만든 부유벽, 일명 수중 커튼을 만들자는 제안이 있었다. 극지연구소는 기술 개발 과정에서 부작용을 예측하고 기술 적용의 옳고 그름을 진단하는데, 수중 커튼에는 반대했다. 결국 그 물이 다른 곳을 향하게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한 발 나아가 수중 커튼을 통과할 때 물의 온도를 낮추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하퍼스 바자] 2006년부터 남극 탐사를 시작했고, 꾸준히 극지역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사이 피부로 느낄 만한 변화도 있었나?

[이원상] 남극과 북극의 이야기에 피로도를 느끼던 대중들의 태도가 최근 5~6년 사이에 확실히 달라졌다. 이상할 만큼 따뜻한 겨울과 종잡을 수 없는 일교차를 비롯한 이상기후가 뚜렷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선거철에 환경 정책을 내세우는 정치인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2014년 남극 대륙에 장보고기지를 세웠을 때만 해도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미국이나 영국도 아닌 한국에서, 1년에 50~60억원씩 투자해가며 남극 연구에 힘을 쏟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극지방의 위기를 논할 때 서식지를 잃은 펭귄과 북극곰의 사연에 연민을 느끼는 데서 그쳤다면,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빙하가 녹고 있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문제까지 떠올린다. 지금 지구 어느 곳에서는 기후 난민이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도.

 

[하퍼스 바자] 지금껏 언론 인터뷰를 통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유엔(UN)의 캠페인 중 ‘ACT NOW’의 뜻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표해왔다. 남극의 문제를 알게 된 우리는 이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이원상] 사실 이 기사를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공산품 하나를 소비해도 재생가능한 에너지로 만든 것을 찾고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건 습관이 되어야 한다. 사소한 선택 하나를 바꾸는 일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유일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https://www.harpersbazaar.co.kr/article/1864575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