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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호우] 도쿄 지하엔 '거대신전'…주택침수 10분의1로 줄였다
최근 몇년간 지구촌은 그간 본 적 없는 큰 비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올해만 해도 3월 케냐에선 홍수로 200명이 넘게 목숨을 잃었고 4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엔 12시간 동안 1년 치 비가 쏟아졌습니다. 브라질에서는 집중호우로 34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매년 여름 강수가 집중되는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기후변화가 현재 추세대로 지속될 경우 50년 내에 시간당 200mm의 비까지도 내릴 전망입니다. 이는 서울시가 대응할 수 있는 홍수량의 두 배입니다. 우리는 예견된 재앙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해 실행하고 있는지 5회에 걸쳐 알아봤습니다.
기후위기로 더 강력해진 극한호우에 세계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현해탄을 건너 일본 도쿄도로 날아갔다. 일본의 수도인 도쿄도는 2020년 기준 무려 1410만 명이 도 내에 살고 있다. 서울 인구의 약 1.5배다.
도쿄도는 1950년대 도시화의 여파로 수해 피해가 빈번하자 다양한 수해 방지 '그레이 인프라(콘크리트 기반 시설)'를 건설했다. 그리고 이제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그 규모를 업그레이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본이 자랑하는 수해 방재 인프라를 둘러봤다.
● 뉴욕 자유의 여신상도 들어가는 '지하 신전'
4월 17일 도쿄에서 약 1시간 30분을 달려 도쿄도 북서쪽에 접한 사이타마현 수도권외곽방수로에 도착했다. 미야기 요시오 일본 국토교통성 간토지방정비국 수도권외곽방수로관리지소 지소장의 안내를 받아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을 따라 약 지하 22m 아래로 내려가자 웅장한 기둥이 떠받친 공간, 조압수조가 한 눈에 들어왔다.
조압수조는 지하터널에서 흘러온 물을 펌프장으로 흘려보내기 전 물의 유속과 세기를 완화하는 시설이다. 길이 177m, 너비 78m, 높이 18m의 조압수조에는 총 59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왜 수도권외곽방수로의 별명이 '지하 신전' 인지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기둥을 비롯해 조압수조의 천장과 벽은 지하수의 부력 작용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발걸음을 멈추고 감탄하자 미야기 지소장은 익숙한 반응이라는 듯 웃으며 "좀 더 내려가면 더 좋은 각도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압수조 바로 옆에 위치한 제1 수직통로(일본명 입갱)의 규모 또한 조압수조 못지않게 거대했다. 수직통로의 내부 직경은 31.6m, 높이는 71m다. 미야기 지소장은 "높이가 46m인 뉴욕 자유의 여신상은 물론 55m 높이의 우주왕복선도 수직통로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 규모"라고 설명했다.
수도권외곽방수로는 1993년 공사를 시작해 2002년부터 부분 개통을 시작한 대표적인 그레이 인프라다. 그레이 인프라는 콘크리트를 이용해 만든 전통적 수해 방지 시설로 댐이나 제방, 방수로 등이 포함된다.
최종 완공은 2009년. 건설에는 약 2300억 엔(약 3조 5468 억 원)의 비용이 들었다. 사이타마현을 지나가는 4개의 강(오오토시후루토네강, 코마츠강, 쿠라마츠강, 나카강)과 빗물 수로에서 범람한 물이 총 4개의 수직통로를 통해 지하터널로 들어온다. 수직통로의 깊이는 66~71m, 내부 직경은 15~31.6m로 인근에 흐르는 강의 유량과 과거 범람한 물의 양을 고려해 지어졌다.
수도권외곽방수로에 설치된 수직통로는 총 5개다. 제1 수직통로는 지하터널로 들어온 물을 조압수조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며 제2~5 수직통로는 강물과 빗물을 지하터널로 흘려보낸다. 수도권외곽방수로에 설치된 지하터널의 길이도 무려 6.3km에 이른다.
수도권외곽방수로에 모인 물은 인근 강으로 내보낸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수도권외곽방수로의 '심장'이라 불리는 쇼와 배수 펌프장에서 그 역할을 한다. 쇼와 배수 펌프장이 왜 심장인지는 그곳에 설치 된 가스 터빈을 보자마자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총 4대의 펌프를 가동하기 위해 터빈에 연결된 수십 개의 파이프가 정말 인공 심장에 연결된 혈관처럼 보였다. 가스 터빈을 최대한으로 돌리면 초당 200㎥의 물을 지상으로 빼낼 수 있다. 물이 가득 찬 25m 폭의 수영장을 1초 만에 비울 수 있는 수준이다. 미야기 지소장은 "이 가스 터빈은 항공기 제트 엔진용으로 설계 된 것을 개량한 것"이라며 "촬영이 금지돼 있으니 눈으로만 봐달라"고 당부했다.
사이타마현과 도쿄도 동부는 과거부터 유달리 침수 피해가 많았다. 접시 그릇 모양의 분지 지형인 데다 하천의 경사가 완만해 큰 비가 내린 후 높아진 하천의 수위가 빠르게 낮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1955년 이후 도시화가 진행 되면서 일시적으로 빗물을 저장할 수 있는 논 대신 주택이나 공장이 들어서 피해는 더 커졌다. 반복되는 홍수 문제를 해결하고자 1983년 '종합 치수 대책'이 실시됐고 그 대책의 일환으로 수도권외곽방수로가 건설됐다.
수도권외곽방수로는 2002년 최초 가동 이후 22년 동안 매년 평균 6.5회 가량 가동되고 있다. 2019년 10월 19호 태풍 하기비스를 막아낸 공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당시 태풍은 48시간 동안 216mm의 비를 뿌렸다. 수도권외곽방수로는 약 1218만㎥의 물을 감당했다.
덕분에 사이타마현과 도쿄도 동부는 침수 주택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었다. 1982년 비슷한 규모의 태풍이 왔을 때에는 2만 9457채의 주택이 침수 피해를 입었으나 2019년에는 2737채의 주택만 피해를 입은 것이다. "확실히 10년 전부터 집중호우의 횟수와 양이 늘어났습니다." 미야기 지소장은 2002년부터 2019년까지 침수 피해 경감 효과 비용을 정리한 막대그래프를 보며 말했다.
실제로 수도권외곽방수로가 2002년부터 2019년까지 50억 엔(당시 가치 660억 원)이 넘는 피해를 방지한 것은 총 10번. 그중 6번이 2013년부터 2019년 사이에 일어났다. 특히 2015년에는 373억 엔(당시 가치 3517억 원) 규모의 피해를 방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전까지 피해 방지 금액의 최고 기록은 2008년의 126억 엔(당시 가치 1109억 원) 수준이었다. 피해 규모가 세 배나 커진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양의 비가 오겠지만 다행히 수도권외곽방수로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미야기 지소장은 말했다.
● 도쿄 홍수 피해를 막는 전략, 조절지
도쿄도 내의 대표적인 수해 방지 시설은 '조절지'다. 조절지는 비가 많이 왔을 때 범람한 물을 임시로 담아두는 역할을 하는데 도쿄도 내에 이런 조절지가 총 27개 있다. 도쿄도는 조절지 덕분에 극한호우가 내려도 총 264만㎥의 빗물을 임시로 저장할 수 있다. 도쿄돔 약 2.2개를 가득 채울 정도의 양이다.
그 중 도쿄 네리마구에 설치된 시라코강 조절군을 4월 18일 방문했다. 시라코강 조절군은 시라코강의 범람을 막고 있다. 시라코강 유역 역시 1955년 이후 급속한 도시화가 이뤄지면서 침수가 끊이질 않았다. 1982년 9월에는 물에 잠긴 지역이 여의도 면적의 약 65 배인 550㎢에 달했다. 이를 계기로 도쿄도는 시라코강 조절군 건설을 시작했다.
시라코강 조절군은 총 3개의 조절지로 구성돼 있었다. 상류 조절지와 하류 조절지 그리고 지하터널이다. "도쿄 내에 있는 27개의 조절지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뉘는데 이곳 시라코강 조 절군에는 세 종류의 조절지가 모두 건설돼 있습니다." 테루이 야스노리 도쿄 제4건설사무 소 공사 제2과장은 설명했다.
1985년 완공된 시라코강 상류 조절지는 네리마 구립 요쿠니 공원으로 비가 오면 공원에 물이 차면서 빗물을 저장하는 유수지다. 공원에는 테니스 코트 등이 설치돼 있어 인근 주민 들이 평화롭게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하류 조절지는 한 마디로 '지하 상자'다. 지하에 콘크 리트로 상자형 공간을 만든 것이다. 지하 상자 위는 네리마 구립 오이즈미바시토 공원이었다. 지하 상자는 2002년에 완공됐다. 상류 조절지와 하류 조절지는 약 200m 떨어져 있다.
"세 번째 조절지가 시라코강 지하터널입니다." 테루이 과장의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45m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터널의 길이는 3.2km, 터널 내 직경은 10m. 수문은 양쪽 끝에 있었다. 시라코강에서도 물이 유입될 수 있고 3.2km 반대편 샤쿠지강에서도 지하터널로 물을 흘려보낼 수 있는 구조였다.
시라코강의 수위가 높아지면 상류 조절지가 1차로 채워지고 하류 조절지가 2차로 가동 된다. 총 21만 2000㎥을 저장할 수 있는 하류 조절지에 강물이 꽉 차면 그 땐 지하터널이 가동된다. 2017년에 완공된 이후 지금까지 총 16번 지하터널이 가동됐다.
이중 방수문을 차례로 열고 지하터널 내부로 직접 들어가봤다. 물이 들어차는 터널임에도 청결했다. 터널 바닥에는 청소할 때 물을 모아서 흘려보내는 작은 수로도 파여 있었다. 테루이 과장은 "집중호우가 내리는 6월부터 10월 사이를 제외한 나머지 기간에는 쌓인 토사를 청소해 다음 호우 기간을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바다로 통하는 지하 하천을 만든다
이처럼 다양한 그레이 인프라를 조성해온 일본도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는 고민이 많다. 도쿄도는 198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 단위로 시간당 50mm가 넘는 호우 횟수가 점 점 더 늘어나는 현상을 수치화했다.
1980년부터 1989년까지는 시간당 50mm를 넘는 강우 가 총 20번 있었지만 2010년부터 2019년까지는 총 59번 있었다. 약 3배나 늘은 것이다. 도쿄의 대응책 중 하나는 조절지를 더 많이 짓는 것이다. 테루이 과장은 "그동안 운영을 해 본 결과 강을 정비하는 것과 함께 조절지를 운영하는 것이 수해 방지에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지하터널은 더욱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시라코강 지하터널은 '간다강 환상 7호선 지하터널'과 연결하는 공사를 최근 시작했다. 두 개의 지하터널을 연결하면 더 많은 양의 비가 내려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계획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두 개의 지하터널이 연결된 이후에는 이 지하터널을 도쿄만까지 연결할 계획입니다." 테루이 과장이 말했다.
지금 지하터널은 빗물을 임시로 저장하는 조절지 역할만 하고 있지만 도쿄만까지 연결한다면 그땐 터널이 아니라 하천이 된다. 지하에 새로운 강을 만드는 것이다. 지하 하천을 통해 빗물을 바다로 흐르게 한다는 스케일에 입이 벌어졌다.
도쿄는 2023년 12월 앞으로 평균 기온이 2℃ 상승할 것을 고려해 하천을 정비하고 조절지와 같은 수해 방지 인프라가 2100년에도 지금처럼 역할하게 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테루이 과장은 "최근 더 많이 그리고 더 자주 오는 비에 대응하기 위해 효과적인 시설 정비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일본 최대 국제 종합 경기장 아래 70만 8000m2의 유수지가?
대규모 콘크리트 구조물로 홍수를 대비해 온 그레이 인프라 강국 일본은 자연을 통해 홍수 조절을 하는 '그린 인프라' 구축에도 진심이었다. 일본 정부와 요코하마시는 강의 하류를 접하고 있어 비가 많이 올 때마다 수해가 발생하는 지역에 스포츠 경기장과 함께 유수지를 만들었다. 1998년에 건설돼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결승전이 치러지기도 한 일본 최대 국제 종합 경기장 '닛산 스타디움(요코하마 국제 경기장)' 얘기다.
4월 16일 오후 1시. 도쿄에서 수도 고속도로를 타고 남서쪽으로 약 40분을 달려가 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 위치한 닛산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스타디움 6층으로 올라가 공원 전체를 내려다 봤다. 스타디움은 '신 요코하마 공원'에 자리잡고 있다.
스타디움을 포함한 공원 면적은 70 만 8000㎡. 모든 공간이 츠루미강에서 범람한 물을 임시 저장하는 유수지다. 유수지는 장마나 호우에 의해 일시적으로 늘어난 빗물을 임시로 모아뒀다가 방류하는 시설이다. 기둥 위에 지어진 닛산 스타디움을 제외 하고 야구장, 축구장, 인라인스케이트 광장은 물론 창고와 매점 건물 등 공원 내 모든 시설은 강물이 범람하면 물에 잠긴다.
"저쪽으로 츠루미강이 있어요." 카이 케이타 신 요코하마 공원 공원관리국 사업부장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발꿈치까지 들어봤지만 스타디움에서는 강이 보이지 않았다. 길이가 42.5km에 달하는 츠루미강의 평소 유량은 많은 편이 아니다. 스타디움에서 나와 10분 여 동안 카트를 타고 공원을 가로질러 근처까지 가서야 수풀 속에 가려진 강을 볼 수 있었다. 4월의 츠루미강은 마치 개울 같았다.
하지만 장마와 태풍이 오는 여름과 가을엔 무섭게 범람한다. 이때 유수지에선 빗물과 강물을 최대 390만 ㎥까지 저장할 수 있다. 공원 내 지면의 높이를 다르게 건설해 츠루미강에 인접한 1차 저류 구역(지면 높이 2.5m)에 물이 먼저 찬다. 닛산 스타디움은 2차 저류 구역(지면 높이 4m)에 있다. 츠루미강과 신 요코하마 공원의 바깥쪽으로는 제방을 쌓았다. 덕분에 인근 주택지는 1998년 이후 26년이 흐른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츠루미강 범람으로 침수 피해를 입지 않았다.
"확실히 이상 기후를 느끼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와 요코하마시는 유수지를 조성하며 10년에 1번 정도 2차 저류 구역에 물이 찰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26년 동안 유수지가 작동한 것은 총 23번. 그중 2차 저류 구역까지 물이 찬 게 벌써 5번이다. 5년에 1번꼴이다. 카이 부장은 "앞으로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유수지 운영이 더 잦아질 것"이 라며 "단단히 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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